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짐 레이너다.
오늘의 주제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생각이라는 건 무엇인가
먼저, 생각이라는 건 뭘까?
사전적인 의미로는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이라는 것을 들 수있다.
실제적인 의미로는 그저 머릿속으로 말을하는 작용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생각이라는 것은
그렇다면, 생각이라는 것은 뭘까?
사람들이 흔히들 착각하는 게 생각이란 말을 입에 달고살거나 머릿속으로 말만 해댄다고 나는 생각이 있다 라고 하는 점인데,
생각이라는 것은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이른 바 이성이라는 힘에서 나오는 능력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생각이 있다고 기본적으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사람의 모습을 가졌다는 것이지,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다들 생각하는 능력을 타고난 건 아니다.
인간 역시도 엄밀히 말하면 동물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인간 역시도 동물(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 된다.
생각이라는 능력은 이성에서 비롯된다.
이성이라는 건 어떠한 사물이나 가치관 등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것을 기초로 생각이란 능력은 빛을 발한다.
이를테면, 인간이 농사를 짓던 시절 콩을 심으면 그 밭에서 콩이 나오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면, 콩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뿌려야 콩을 얻을 수 있는지 깨달아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성, 즉 생각이라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생각하지 않는 현대인들
그러나 참 애석하게도,
요즘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대부분은 생각을 거의 혹은 전혀 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이 주장하기론 자기들이 머릿속으로 말만 하는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생각을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 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여러 문제들을 낳고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서양 철학을 잠깐 언급해보자.
모더니즘이 근간이 되었던 근대시대부터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던 사람들은 이성의 처절한 실패 -환경파괴와 같은- 로 인해 이성을 불신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겉보기에 멋지고 옳으면 무조건 옳다고 하는 비이성ㆍ비합리주의를 내세우게 됐다.
문제는 이 비이성ㆍ비합리주의라는 게 이성에 대한 불신의 감정일 뿐, 이성이 담당하는 옳고 그름 판단의 능력을 대체하는 가치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성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하며 명확한 가치를 제공해주는 데에 비해 포스트 모더니즘의 논리는 이성을 불신한다고 말은 거창하게 꺼내지만 그에 대한 합당한 근거제시는 하지 못한다.
정작 그 근거란 걸 제시하면 자신들이 얘기하는 비이성주의가 옳다는 걸 정면으로 부인하게 되는 딜레마가 생긴다. 합리적이지 않겠다면서 합리적인 이유를 댄다는 게 우습다는 건 여기서 생기는 것이다. 즉, 포스트 모더니즘은 겉멋에 찌든 멍청이들이 찌질한 궤변을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멍청이들의 미사여구일 뿐이지만, 궤변과 억지로 포장된 채 세상을 지배하고있다. 이성의 만용이 불러온 실패. 그리고 그 이성을 불신한다는 단 하나의 그럴듯한 이유만 갖다붙여놓고 비이성이 옳다는 망상을 세계에 심어놓은 거다.
어느 한 동네에서 물건을 살 수있는 시장이 하나밖에 없다고 치자, 그런 시장이 모종의 이유로 사람들이 없애자고 해서 없앴다고 하면 그 동네 사람들이 물건을 살 수있는 시장은 사실상 없어지게 되는 것과 같다.
즉, 이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는 이성의 실패에 대한-모든 것을 컨트롤 가능하다고 과신했던 만용이 문제지 이성 자체의 문제가 아님에도- 반감 이상, 이하도 아닌 저열한 사회라는 이야기다.
웃기는 것은, 모 위키 페이지에서 이성에 대해 이르길 옳고 그름도 개개인의 감정일 뿐이라고 얘기해놓았다는 건데 솔직히 냉정하게 얘기하면 병신같은 개헛지랄이다. 옳고그름이 개개인의 감정에 불과하다면 법이든 도덕이든 뭐든 지켜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들을 알려주는 규범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합의가 되었다는 말인가?
예를들면 자신이 어떤 나쁜짓 -근데 그 나쁜짓이란 것도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규정할 수 있다는 건 아나?- 을 했다 치자. 그럼 그 행동에는 응당한 질책과 체벌이 따르고 반대의 경우는 상을 받고 칭찬을 듣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동의할텐데, 과연 이성이라는 것에 대해 정의한 모 위키의 편집자가 얘기했듯 단순한 감정일 뿐이라면,
세상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라고 얘기할 수밖에는 없는 것 아닌가? 결국 그들도 포스트 모더니즘에 빠져 헛된 망상을 현실인 것마냥 적시해놓은
멍청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들이 얘기하는 것과 실제 사례들이 모순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알 의지조차 없다는 것만 증명한 셈이다.
아무튼 본론으로 넘어와서,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이 당연시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의 혜택 -이를테면 스마트폰ㆍ텔레비전- 속에서 모든 것을 문명이 알아서 해주다보니 편리함이 주는 쾌감 속에 빠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것이다.
정말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스마트폰 등 인터넷 기기의 이용으로 수많은 정보들과 지식들이 들어오는 데 반해 사람들의 생각은 점점 짧아지고 어리석어진다는 점이다.
코로나 시국을 들어보자.
자 그렇다면 여러분, 코로나 시국을 들어보도록 하자. 이 코로나 시국에서 정부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균 7년의 기간을 두고 안정성이 확보되지만 1년밖에 안돼 개발ㆍ보급되어 불안정성이 높아
부작용의 척도와 증상들이 확실하게 유형화되지도 않은 코로나 백신을 맞는 게 옳다고 강요하고
그 백신을 맞고 어떤 일들이 생겼다며 무작정 백신 부작용이라고 백신과 결부시키기만 하는 대중들의 태도까지, 요즘은 그야말로 비이성과 비합리의 시대 그 자체라고 할 수있다.
더욱이 사람들은 하루 감염자가 2~3개월 전과 비교해서 대략 10배 이상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에 대해서 전혀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 그저 정치적으로 좌ㆍ우파 편만 갈라서 정의요 악당이요 하는 편가르기에만 심취한,
미친듯이 찌질하고 유치한 어린애 싸움이나 하고 앉아있을 뿐이다.
백신을 맞아도 오미크론 변이에 걸리고,
새로운 변이들은 나타나고, 백신 자체의 효능도 그다지 검증이 안되었을 뿐더러 부작용마저 나타나기 쉽다면 우리가 찾아야 할 대안은 뭐라고 보이는가?
정부에 욕하고 옹호하고 편가르기는 하면서,
정작 왜 개개인들은 감염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하는 자문은 왜 하지 못하는걸까?
그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것이다.
당신들이 더럽게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정의할 수있다.
정말 당신들이 단지 머릿속으로 궁시렁대는 수준의 헛소리가 아니라 진정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안다면 당연하게 자신들이 할 수있는 한 해야할 일을 알 수 있어야한다. 이를테면 사회적 거리두기 철저준수 같은 것을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짐승같이 자기 본능대로 살면서도 생각은 없어서, 자기 좋은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규율도 무시하면서 생각은 있는 척한다.
내가 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대화 문제도 그렇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잘 썼으니 우린 감염 안돼.' 같은 허무맹랑한 믿음을 가지고 공공장소에서 신나게 전후좌우 다닥다닥 붙어 쫑알쫑알 대는 이들이 진짜 너무많다.
코ㆍ턱스크야 말할 필요도 없고,
완전히 잘 쓴다하여도 감염의 위험은 여전히 KF94 기준 6%이며 82정도라면 18%나 된다.
더욱이 백신 접종자라도 돌파감염이 여전히 30% 내외에서 이루어지며 재감염률 역시 32%정도임을 감안하면 거리두기와 대화 자제는 마스크의 철저한 착용 유무와는 관계없이 필수로 개개인들 선에서부터 지켜져야 옳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연 지켜지고 있는가?
델타고 오미크론이고 무슨 변이고 상관없이 아니라는 사실은 데이터 수치가 증명해준다.
2~3개월 전 최대 일 감염자수는 3천명 안팎이었다.
그런데 똑같은 오미크론 변이 감염자 수가 어느순간 1만 명을 찍더니 며칠만에 2-3만, 심지어는 4-5만 명을 찍고 이제는 54,000명 안팎을 찍고있다.
이것이 정녕 국민들이 생각을 하고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면서 정부를 향해 분노만 할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보이는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국민은 대통령과 정부를 자신들 사이에서 뽑았다.
그렇다는 건 자신들과 같이 정부도 미치도록 생각을 안한다는 얘기고 나아가 자신들도 생각을 안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반증일 뿐이다.
생각을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고, 본능대로 살면서 겉모습만 인간이라고, 화려하게 치장하면 인간인가? 아니다.
오히려 개나 고양이들이 훨씬 더 많이 생각하고 살 지는 모르는 일이다.
내가 지난 글에도 얘기했듯, 나는 미군에서 일하는 민간 직원이다. 셔틀버스 등을 타다보면, 마스크를 썼답시고 다닥다닥 앉는데다 내 뒤에 바짝붙어 앉아서는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 썼다고 신나게 수다를 떤다.
수다를 떠는 거야 자기들 자유라 이해하고 인정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잘써도' 바이러스의 전파위험은 여전히 존재하는 데도 그저 수다를 남한테 떡하니 붙어서 떨어야만 하는걸까?
솔직히 시끄러운 상황과 사람들 많은 것을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 그들이 불쾌한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밀폐된 버스 안에서 거리두기도 하지않고 아무리 마스크를 썼다고 해도 수다를 떨면
공기 중에는 여전히 바이러스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를 지적하면 기분나쁘다는 듯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같은 비아냥과 경멸어린 눈을 흘기는 사람들을 보며 참으로 이나라가 답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일을 하거나 하는 평상시 상황을 대입해도 상황은 똑같다. 사람들은 흔히들 좋은 게 좋은거다 라고
하면서, 본인들에게 배려하면서 상부상조해야 직장동료다 라고들 얘기한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들은 자기들 좋을 때만 협력을 강조하지 그 협력을 자기들도 해야한다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내 경우를 예로들더라도 그렇다.
최소한의 배려만 요구해도 바쁘단 말만 하며 분노하면서, 정작 자기들이 불편하면 득달같이 무례하다고들 한다.
생각이라는걸 할 줄 모르는 것들의 전형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생각을 한다는 건 무슨 의밀까?
생각을 한다는 건 결국 인간이 인간이라고, 짐승과 다른 존재라는 걸 표시하는 증표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면서 머릿속으로만 중얼댄다고 생각한다는 착각은 망상에 불과함을 깨닫고 옳고 그름을 직시하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내가 볼 때,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기분대로 행동하는 이들이 차고넘치는데 기분대로 행동하는 건 개나 돼지같은 짐승들도 다 하는 것이다. 그들과 다른,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라면 아무리 남들이 다 좋다해도
그것이 옳지 않다면 거부할 줄도 알아야한다.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첫걸음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싫어하는 건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를 듣고 분노하면 인간이 아닌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어떤 일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어떤 변수가 생기고 결과가 나오는지 등을 고려해야되는 게 정상아닐까?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짐승처럼 산다.
짐승같은 행동을 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는 확실히 짐승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짐승들도 감정이 있다.
그들도 자기 본능에 충실하다.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성이 필요하다. 인간이 이성을 버리고 생각하기를 연습하지 않는 한, 이 포스트 모더니즘 세상에서 특히 감정에만 충실하는 한 인간은 절대 인간이라 불릴 수 없다.
당신은 생각하는가?
기분에만 충실한 이들이 대다수라고,
당신 역시 기분에 매몰되어선 안된다.
기분은 단지 이성 아래에 종속되어 효율적인 방향으로 -이를테면 어떤 가치에 대한 자신의 신념 등을 설명하거나 선호도 등을 얘기할 때- 쓰여야 하는거지, 기분에만 충실하지 말라.
감정은 당신을 개돼지로 만들 뿐,
당신을 인간답게 하지는 못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현대인들이
나는 너무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