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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구분의 중요성.

짐 레이너 2023. 5. 13. 09:40

짐 레이너다.
이번에는 공사구분의 이야기를 하고싶다.

여러분은 공사구분을 잘하는가?
나는 솔직히 공사구분을 철저히는 하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간혹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서론은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가겠다.
예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던 것 같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얘길 하고싶다. 내가 다니는 미군부대 내 회사에서도 참 한국인들은 공사구분을 못한다.
이를테면 이런것이다. 내가 받아야 할 물건을 제대로 배달하지 않고 엉뚱한 물건을 내것이라고 갖다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몇 번 좋게좋게 웃으며 부탁도 해보고 사정사정도 해봤는데 계속 개선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언제는 참다참다 못해서 물건을 가져다주는 이들에게 항의를 했다.  "~ department 로 오는 물건이 제 것이고, 나머지는 아니니까 확인 좀 해주시고 보내주세요. department  넘버 끝 2자리만 같다고 제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었는데, 오히려 내게 얼굴을 붉히며 일을 하게 만든다고, 지금 바쁜 거 안보이냐고 내게 화를 냈고 곧 그 일은 내 Boss에게 전달되어 나는 그녀의 office 로 불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얘기했다. "~씨, ~씨도 내 언더에 있는 사람이고 같은 식구인데 왜 얼굴을 붉히며 일을 해야 해?
다른 사람들도 다들 바쁜데 그거 하나 이해 못해서 일을 벌여야 하는거야?"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설명을 했다. "~님, 제가 일을 할 때 제 구역에 배당된 물건의 department 넘버 끝 2자리 번호만 보고 무작정 저한테 갖다놓고 심지어는 제 담당 구역 물건이 아니어도 비슷한 케이스이면 무작정 저한테 다 갖다놓고, 일하기 편하게 창고 뒷편에 가져달라고 하는 것이 화를 내고 불평을
해야 할 일입니까? 배달은 저분들 몫인데 단 몇걸음, 1분도 안걸릴 일을 여러번 요청했는데도 그래야 하나요? 업무 상의 편의를 조금씩 배려하자는 취지였을 뿐인데 화를 내는 게 이상하네요."

그러자 그녀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내게 "그래도 얼굴 붉히고 일하지 맙시다. 다들 ~씨보다 나이많으신 분들이잖아요."

공사구분의 중요성

내가 예전 글에도 얘기했지만, 한국인들은 전체주의가 매우 심하다. 그것은 비단 MZ라고 자칭하고 개인주의라고 자칭하는 젊은 층이라고 해도 비단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을 포함한 한국인 대다수는 매우 비이성적이며, 또한 매우 비합리적이다.

동료들의 요지는 이것들이다.

1. 나이가 젊으면 함부로 얘기하지 말아라
2. 우리는 너무 바쁘다
3. 우리가 잘못했더라도 너희 부서 물건이면
     네가 직접 해도 되는 거 아니냐
4. 괜시리 얼굴 붉히고 일하는 건 좋지 않다


내가 말했던 요지는 딱 이것들이다.

1. 내가 담당하는 구역에 해당하는 물건만 갖다달라
2. 일하기 편하게 물건을 이쪽저쪽 막 갖다주지 말고
     내 담당구역 창고의 뒷편에 갖다달라


봤는가? 뭐가 문제이고 뭐가 합리적인지?
나의 논지는 이 두 개가 전부고 공적인 업무상 요청이다.
이게 어려운 사안인가? 아니 그 이전에 이것들이 얼굴을 붉힐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보이나?

공사구분은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공사구분의 기본은 바로 합리적인 이성과 냉정함이 필수이다. 허나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냉정하지도(냉정하다고 자처하는 멍청이들은 많다. MBTI에서 내 케이스같은 INTJ가 나와서 자기가 냉정하다고 와 나 냉정하네ㅋㅋ 거리는 병신들도 봤다. 대다수가 이런 식이다. 혹은 까칠한 게 냉정한 줄 알든가.) 못한데다 비이성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MBTI는 참고용이지 그걸 맹신하는 것이 오히려 더 멍청하다. 같은 유형이라도 개개인의 성격이 다 다른건 당연한데 어떻게 100% 혹은 거의 100%에 가깝게 유형화 시키나.

역사적으로 똘똘뭉쳐서 역경을 헤쳐나갈 줄밖에 모르는 스타일이니 감정이 필요한 곳에서는 잘될 지 몰라도, 정작 대부분 냉정한 이성이 필수적인 상황들에서는 사리분별이 안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공사구분이란 철저히 합리적인 선택으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얘기.

다시 위의 얘기로 돌아와서, 내가 요청한 사항은 딱 두가지 뿐이었다. 공적인 부분에서 단순하게 '내 department 넘버에 해당하는 물건인지 확인해보고 물건이 맞으면, 내 골목 뒷편에 가져다 놓는 것'만 해주면 그냥 끝이다. 자기들이 얼마나 바쁘든 말든 그것까지 내가 알아줘야 할 이유는 없다.
사적으로 내가 내 구역에서 하는 일도 너무 바쁘고 더욱이 나 혼자 모든 일을 다 하고 고객 contact 도 내가 직접 다 한다.
그런데 내가 그들이 얼마나 바쁜지, 그래서 그들이 못하는지 이해해줘야 옳은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No 이다. 바쁜건 누구나 매한가지다. 한국인들의 공사분별 못하는 저 논리대로 따져도 내가 훨씬 더 바빴음 바빴지 여유롭진 않기때문에 내가 이런 두가지 요구를 하는 것 역시도 당연히 타당한 요구가 된다. 즉 내가 남들보다 더 한가하거나 내 일을 아예 안하는 수준으로 돈만 축내는 월급 루팡이 아닐바에야, 내 요구는 감정적으로 따져도 전혀 부당한 요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배려라는 건 나만 편하게 해달라는 게 아니다. 똑같이 다들 힘들지만 조금씩만 서로 양보해서 조금씩 덜 힘들게 일하자는 얘기다. 자기들이 바쁘다고 일방적으로 어느 한사람이나 한편이 희생해서 다른 한사람이나 편을 완전히 편하게 해주자
이러는 것부터가 배려가 아니거니와, 엄청난 망상에 불과하다.

공사구분을 제대로 하려면

자, 공사구분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위에도 얘기했듯 정답은 이성(합리적인 사고)을 가지는 것, 그뿐이다.

이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다른 얘기를 해보자.
정신병자들이 무엇으로 정의되는 지 아는가?
이성적이고(차분한 척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이성적인 사람)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을 스스로 냉정하게 파악할 줄 안다. 즉, 자신의 결함을 확실하거나 어렴풋이라도 인지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고칠 능력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차치하고 말이다.

그런데 정신병자들은 그 자기객관화가 안된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건 무조건 진실이고 사실이며 싫으면 그것이 설령 진실이라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병자들은 진단된 사람들 말고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해당된다고들 한다.(실제 내 지인이었던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이 그대로 말씀하신 얘기다.) 세상엔 완전한 정상인은 없다고 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문제를 직시하고 고칠 의지도 있는데 고쳐지진 않는 신경증과 정신병자 둘 뿐이고 후자가 월등히 많다.

즉, 공사구분은 철저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매우 단순한 요청조차 제대로 캐치못하고 분노하고, 나아가 나에 대해 불순불평분자 라거나 나쁜놈 취급하는 이들의 태도부터가 공사구분이 아예 안된다는 반증이 아닌가.

자,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시하겠다.
첫째로, 무엇이 공인가?
공은 말그대로 업무적이거나 공식적인 부분, 즉 사적인 감정 등이 '배제된, 혹은 배제되어야만 하는' 부분을 뜻한다.
내 위의 사례에서 했던 요청같이 철저히 업무적인 부분만을 요청하거나 지적하는 것이 바로 공적인 부분이고 타당한 스탠스이다.

둘째, 무엇이 사인가?
사는 사사로운 감정이나 상황 등, 정적인 것들을 통칭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 있는 내 사례에서 저들이 얘기하는 변명과 분노의 스탠스가 바로 '사'이다.
내게, 그리고 저 상황에서는 사가 들어가지도 않고, 들어갈 수도 없다. 그것이 정상이다.

딱히 솔루션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있는 게 아니다. 철저히 감정을 배제하고 공적인 상황과 자리에서는 공정하게 행동하고 그 외에는 사적으로 본인의 취향껏 정적인 사람이 되면 되는 일이다. 그게 어려운가?

물론 공사구분이라고 했다고 무조건 공만 중시하거나 사만 중시하는 등 한쪽으로 치우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공사구분은 철저해야한다. 내 기분이나 감정때문에 쓸데없는 불협화음은 적어도 없어야 한다.

한 개의 일화를 더 보자.
대학시절 온라인으로 학우들과 토론을 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자세한 일과 목적은 기억이 안나지만 너무 감정적인 부분이 보여서 토론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학우들은 내게 감정적으로 공격을 해댄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이가 없었다. 토론들이 토론이 아니라 친목이나 싸움판이 되는 것에 대해 지적을 했는데 그것을 기분의 좋고 나쁨으로 판단을 하다니, 그것이 공사구분 못하는 것이라는 걸 모른다는 말인가?

또 토론이란, 상대가 나의 의견에 동의를 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음도 역시 감안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그것도 젊은층조차도 토론의 장에서 토론을 한다는 것이 '떠들고 웃거나 대판 싸워야' 하는 것이라고 단체로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동의가 되면 합의된 이야기를 토대로 새 결론을 발표하면 끝인거고, 안된다면 서로의 의견을 절충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면 되는거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감정이 너무 앞서는 민족이다보니,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일반적으로는 토론도 못하고 감정싸움을 즐기거나 감정놀이(친목질)를 하는 데에 급급한 모습이 짙다. 이러니 똘똘뭉쳐서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고, 젊은층들 특히 MZ다 뭐다 무슨 미사여구나 타이틀만 덕지덕지 붙여놓고 본인들을 개인주의자고 자유주의자라 외쳐대긴 하는데 그 행동과 인지가 일치가 안되는 인지부조화에 시달리기 일쑤가 아닌가 싶다.

이성을 단련하라. 이성은 '마음속으로 말을 지껄인다' 라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또 무엇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무엇이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지를 구분하는 능력이다. 지구는 둥글어서 바다 멀리 항해해도 떨어져 죽지않는다 라는 검증된 사실(지동설)을 안다면 그게 아니라(천동설)고 외치고 칼을 목에 들이밀어도 절대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옳다고 외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이성을 단련하는 것은 옳지 않거나 확실히 부정된 사실(상식, 이것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사실을 뜻한다)을 부정하고 확실히 검증된 사실과 옳은 진실들은 이유와 근거를 들어 옳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할 수 있다. 공사는 이성을 단련해야 보이는 법이다.

결론

자, 한국사람들. 공사구분을 못하는 것은 결국 죄악이다.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이성이 있어야 하고, 공사구분을 하려면 합리적으로(차분한 척만 하는 게 아닌) 진정 이성적인 사고를 습관화시켜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감정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감정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공사를 분별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낭패보게 하거나 신변에 문제가 일어나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감정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사적인, 정서적인 활동에서나 제한적으로 쓰이는 것이 옳은 것이다.

한국인들아.
이 글을 읽고 부디 깨닫기를 바란다.
공사구분은 어디까지나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사실을.